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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工父

서울대학교 - 정보와 산업 기술의 이해 #1 - 김태유 교수님

국가 발전의 기본 원리 

 우리가 좋아하고, 또 중요시하는 축구, 골프, 테니스, 그리고 영어는 모두 영국에서 온 것이다. 우리 나라보다 많이 크지도 않는 24만평의 섬나라 영국이 어떻게 세계에 영햐력을 미치는 나라가 되었을까? 이 질문에서부터 이번 강의가 시작되었다. 

 영국하면 떠오르는 것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이다.  엘리자베스 2세가 통치하던 시절 영국 연방 왕국의 영토는 총 1880만 제곱km에 달했으며 문자 그대로 영국의 통치를 받는 나라는 해가 지지 않았다. 남한보다 조금 더 큰 나라, 그것도 대륙과 연결되어있지 않는 섬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세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을까? 혹자는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에 시장의 발달과 자본이 유입됬기 때문에 산업 혁명이 일어났고, 이러한 산업 혁명으로 인해 영국의 힘이 강해질 수 있었다고 말하곤한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원조는 영국이 아니다. 그 첫번째는 스페인이었다. 스페인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사벨 여왕이 콜럼버스의 대항해를 후원하고, 그 이후에 여러 식민지들을 정복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항해가 유럽이 아닌 중국에서 먼저 행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록에 의하면 정화라는 중국의 환관은 총 7차에 이르는 대항해 원정을 이끌었다. 이런 정화의 대원정은 동남아시에서부터 말래카, 태국, 인도. 아프리카의 케냐에 까지 이르렀고 그 규모에 있어서도 축구장만한 배가 60척을 포함해 총 100~300척에 달했었다. 그러나 콜럼버스의 대 항해보다 60여년 앞었고, 그 규모면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대원정이 가능했던 중국은 그 후 약 5백년 뒤 영국와의 아편 전쟁에서 패하고, 사실상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교수님은 중국과 영국의 국력의 변화를 농업 중심의 사회와 상공업 중심의 사회의 차이에서 찾으셨다. 농업의 경우 들어간 노력에 비해 발전이 감소 성장 형식으로 나타나지만, 상공업의 경우 그 성장이 복리 성장과 같이 나타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규모를 이루었을 때 부터는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게된다는 것이었다. 즉 상공업을 중요시 했던 영국의 자세가 해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강의의 도입부의 질문에 대한 해답이었다. 또한 그 기폭제 역활을 한 산업 혁명의 시발점이 된 증기 기관의 발명은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던 프랑스인 위그노(개신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대거 이민해 왔기에 가능했다. 영국은 찰스 2세 이민법을 만들어 그들에게 주거를 제공하고 무료러 여러 서비스를 제공했다. 현재 유럽의 경제를 이끌고 있는 독일 역시 같은 시기에 포츠담 포고령을 통해 기술력이 있는 위그노들을 독일로 이민시키는데 주력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순간순간 울분이 솟았다. 먼저는 일본의 생체실험 얘기를 들을 때 그러했고, 다음은 현재 IT 업계의 현실이 떠올라서 그러했다. 비록 프랑스의 박해를 피해 온 위그노였지만, 그들의 기술력을 영국과 독일에서 높게 평가해주고, 또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부러웠었다. 전기전자공학과에 재학 중이고, 앞으로 계속 연구를 계획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현재 한국의 이공계 인력에 대한 대우와 비교가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2008년부터 군 대체복무로 한울 로보틱스라는 중소기업에서 2년 6개월동안 개발 관련 일을 했었다. 중소기업에서 실제로 일을 하면서 한국에서 IT관련 중소기업을 다닌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소비가 위축되자 그 여파로 우리 회사는 몇 달간 월급이 체불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정을 가진 대리님과 팀장님들은 회사를 떠나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가셨고, 그들이 하던 일은 나를 비롯한 여러 군대체복무자들에게 넘어왔다. 게다가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IT, 제조 업계에서 삼성과 LG와 같은 대기업들과 같은 상품으로 경쟁하는 때는 매우 어려웠다. 부품 수급에서 부터 시작해서 유통 마진까지 대기업과 중소기업과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났다. 같은 부품으로 같은 물건을 만든다 해도 삼성이 만들게 되면 내가 다니던 회사의 거진 절반 가격으로 만들어 팔 수 있었다. 그 불공평함을 중재해줘야 할 것이 정부임에도 내가 다녔던 회사와 주변 중소 기업들의 상황을 보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었다. 

 상공업에 천시하던 조선이 망한 것은 필연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완전 공감했었다. 한국사를 살펴보면 유교를 중요시했던 조선 사회는 성리학의 질서에 묶여있었다. 특히 상공업을 천시하고, 실용적이 못한 학문만을 중요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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