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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Dear Diary

매트릭스 결말 [퍼옴]

출처:  오마이뉴스 

EANC 잉글리쉬 센터(http://www.eanc.co.kr) 영화분과위원회에서는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를 중심으로 영어를 연구하며 작품분석을 해왔습니다. 

그동안 쌓인 작품분석기법을 토대로 매트릭스를 분석한 결과 1편에서 3편까지 전편을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프로이트의 이론입니다. 

우리는 매트릭스 전편을 대사, 인물의 이름, 숫자까지 빠짐없이 분석을 했고, 감독이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파악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추가 기사를 작성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더이상 매트릭스의 비밀은 없다


<매트릭스 3 레볼루션(The Matrix Revolution)>이 개봉된 후 국내 관객과 평론가들의 반응은 워쇼스키 형제가 내놓은 야심찬 결말에 대한 실망감 혹은 배신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매트릭스>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무엇인가? 

<매트릭스>를 워스트쥬니어(Worst. Jr)에 선정한 '딴지일보 영진공'의 기사를 잠시 인용해 보겠다. 

성경과 IT에 대한 지식, 그리고 동서양을 가르는 철학을 저변에 깔고 거기에 동양무술, 재패니메이숑에 대한 오마쥬로 좌판만 딥따 크게 벌려놓은 뒤 3탄에 이르러 액숀으로 눈가리고 아웅하며 능청스럽게 마무리하는 꼴이라니. 

이러한 매트릭스에 대한 이런 평가는 딴지 영진공에서 좀더 솔직하고 과격하게 표현했을 뿐 대부분의 언론에서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과연 워쇼스키 형제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었던 걸까?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 만든 영화가 기껏 홍콩액션과 동서양 철학의 짬뽕에 불과한 것일까?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기본적인 뼈대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하지만 기본 뼈대를 이루는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매트릭스는 영원히 미궁속으로 빠져버릴 수밖에 없다. 불행한 사실은 그 누구도 매트릭스의 기본적인 뼈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뼈대는 파악하지 못한 채 살점 뜯어먹기만 하고 있다는 말이다. 각자 자신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논리가 원인이 되고 그것이 결과가 되어 그들이 만들어낸 <매트릭스>는 온갖 잡탕 쓰레기 철학의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매트릭스의 가장 기본이 되는 뼈대란 무엇일까?

1편에서 문학적 기법으로 나타냈던 것과 달리 2편 리로디드와 3편 레볼루션에서 워쇼스키 형제는 아예 노골적으로 그 뼈대를 드러내 보인다.

<매트릭스> 2편에서 등장한 'The Architect'의 얼굴을 떠올려 보자.(이 아저씨는 3편 마지막 신에서 돌연 등장해 관객들을 당황케 한 장본인이다.) 찬찬히 잘 살펴보면 프로이트의 사진과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로 비슷하게 인물설정을 해놓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지 워쇼스키 형제는 한가지 단서를 더 제공해 준다. 

2편에서 The Architect 가 처음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 생전의 프로이트가 즐겨입던 정장에 포즈까지 거의 동일하게 설정한 것을 알 수 있다. 웬만한 독자라면 이쯤해서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렇다. <매트릭스>의 기본을 이루는 뼈대는 프로이트의 이론이다.

<매트릭스> 전체 줄거리가 프로이트의 자서전이라 해도 좋을 만큼 프로이트의 이야기를 잘 담아내고 있고, 그의 이론으로 한단계 발전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매트릭스>에 프로이트의 이론을 적용시켜 나가다보면 모든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 간단하게 프로이트의 이론을 둘러보도록 하자. 우리가 <매트릭스>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프로이트의 이론은 리비도와 자아, 그리고 초자아이다. 어려운 개념이 아니니 산책하는 기분으로 잘 따라오기 바란다.

먼저 첫 번째, 리비도는 욕망이다


<매트릭스>에서 1은 당연히 neo(The one)라고 볼 수 있다.

프로이트는 욕망을 결코 나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보았다. 즉, 기존의 사회체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욕망이 발생했다면, 그것을 억누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새로운 사회체제로 갈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욕망이라 하면 '욕망 = 성적이고 더러운 것 = 죄'로 인식하는데, 프로이트가 설정한 욕망을 그런식으로만 받아들이면 이해의 폭이 좁아지게 된다. 예를 들어 기존의 저작권 법이 해결하기 힘든 mp3 에 대한 네티즌들의 요구도 초자아와 리비도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아이다

일반적인 인간의 의식상태라고 보면 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의식이다. <매트릭스>에서 2는 주요인물들을 제외한 어중이 떠중이들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세 번째는 초자아, 즉 사회규범이다.


<매트릭스>에서 3은 트리니티(trinity)이다. 초자아는 항상 리비도(욕망)을 감시하며 자신의 틀(사회규범)안에서 그 욕망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왜 초자아(사회규범)를 트리니티(삼위일체)로 설정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서양사회를 대표하는 사회규범이 기독교 정신이라는 사실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Neo는 기존의 사회규범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새로운 욕망이다

Trinity(초자아)는 Neo를 지켜보면서 어떻게든 그 욕망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한다.(왜? 기존의 사회규범이 그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다보면 그 욕망이 폭발해서, 아예 사회구조 자체가 산산조각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여기서 다시 한번 복습해보자. 프로이트는 기존의 사회규범이 해결하지 못하는 새로운 욕망을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결국 그 말은 기존의 사회규범(Trinity)에서 새로운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좀더 발전된 사회규범, 더 나아가 인류사회가 한 단계 성숙된 사회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Neo가 3편에서 인류를 구원한다는 구도는 어느 한사람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사회가 새로운 욕망을 긍정하고 그것을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받아들이려 했을 때 진정한 인류의 발전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이런 이유로 영화 속에서 그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을 때 프로이트가 등장하게 된다.) 

<매트릭스>의 기본적인 뼈대는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다. 이제 여기에 조금씩 살을 붙여 1편에서 3편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시나리오를 추리해 보도록 하자.

<매트릭스>는 각 장면뿐 아니라 대사 속의 단어 하나까지 소름끼칠 정도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것을 모두 다룰 수는 없으므로 여기서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의 역할을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이 스스로 의문을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한다.

트리니티는 앞서 언급한 초자아(기존의 사회규범)이다

1편 트리니티의 첫 대사를 살펴보자. 

"Is everything in place?"
직역하면 '모든 것이 다 제자리에 있는 거지?' 즉, '사회의 모든 부분, 영역이 잘 돌아가고 있지?'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항상 자아에게 확인하고, 욕망(리비도)를 지켜보는 것이 트리니티(초자아)의 역할이다. 초자아는 경우에 따라 논리적 근거가 약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이성(자아)에 의해 논리적으로는 쉽게 공격당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규범을 뜯어고치려고 하면 논리적으로 말도 안되는 초자아가 엄청난 힘을 발휘해서 자신을 방어하게 된다.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처럼 모순으로 가득 찬 법에 대해 논리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공격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개정 또는 폐지를 하려는 실제적인 움직임이 일어났을 때 어떤 힘을 발휘했던가? 

초자아에게 함부로 덤비다간 엄청난 저항을 받을 수 있다. 논리적으로 보면 가냘프고 작은 여자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지만, 요술과 같은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트리니티가 1편 첫부분에서 경찰들을 날려버리는 그 유명한 장면을 떠올려보시라.)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하시길. 그렇다고 해서 초자아를 단순히 선악구도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초자아는 국가보안법이 될 수 있으며, 남녀평등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현실세계에서 초자아는 합리적인 이성에 의해 끊임없이 공격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매트릭스>는 그러한 합리적인 이성을 2(two)로 상징한다.

1편의 첫 장면에서 경찰이 하는 말을 대화를 잠시 엿들어보자.

Lieutenant - 
I think we can handle one little girl.
I sent two units. They bringing her down now.


왜 'one unit'도 아니고 'three unit'도 아닌 'two unit'을 설정했을지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2편에서 트리니티와 추격신을 벌이는 친구들도 'twin '이다.

<매트릭스> DVD를 가지고 있다면 영어자막를 켜놓고 대사에 나오는 숫자를 중심으로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수십개의 단서가 잡히게 될 것이다.(참고로 트리니티가 처음 등장하는 방의 호수는 303, 네오의 방은 101 이다.)

그렇다면 초자아인 트리니티와 받아들이기 힘든 새로운 욕망인 네오가 어째서 사랑에 빠지게 된 걸까?

사회규범(Trinity)은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든 새로운 욕망(Neo)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곁에 두고 어떻게든 그 욕망을 해소시켜 사회체제 안에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욕망이 쌓이게 되는 경우, 자칫 잘못하면 사회체제 자체가 산산조각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새로운 욕망(Neo)은 현재의 사회규범이 자신의 욕망을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더라도 섣불리 욕망을 분출시켜 사회체제 자체의 위협을 가져오기 보다는 일단은 현재의 사회규범안에서 어떻게든 욕망을 충족시키려 노력한다.

생각해보라. 사회체제가 사라지게 되면 인간의 욕망도, 인간이 규정해놓은 사회규범도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자아는 크게는 사회체제, 작게는 한 개인의 의식으로까지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영화 속에서 트리니티와 네오는 서로를 갈구하고 사랑을 하게 되지만 새로운 욕망을 완벽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 사회규범인 트리니티의 운명은 애시당초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영화속에서 네오와 트리니티의 구도를 살펴보면 1편에서는 트리니티가 네오를 구해주고 2편에서는 네오가 트리니티를 구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1편에서는 트리니티가 새로운 사회적 욕망인 네오를 사회규범 안에서 어떻게든 받아들이려 하고, 2편에서는 네오가 사회규범이 아예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며 트리니티를 구해내고 만다. 우선은 체제에 안주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가 지속되다보면 사회의 안정을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사회로 발전할 수는 없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이론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을 3편에서 제시해준다. 네오는 기계와의 싸움에서 눈을 잃게 되고, 쉽사리 포기하기 힘든 현 사회규범인 트리니티가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자(새로운 사회적 욕망을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하게 된 낡은 사회규범에 대한 맹목적 편견이 사라지는 것을 뜻함) 비로소 빛을 발견하게 된다.

모피어스(Morpheus)


모피어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꿈의 신'이다. 에이전트가 네오에게 말하는 장면을 보면, "A man who calls himself Morpheus". 즉, 스스로를 '꿈의 신'이라 부르는 자, 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모피어스가 프로이트를 상징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모피어스가 함장으로 있는 우주선의 이름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 이란 성경 다니엘 서에 등장하는 바빌론 왕의 이름인데, 자신이 꾼 꿈을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꿈을 해석하는 자들에게 그 꿈을 알아내라고 했던 일화로 유명하다.

그러므로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프로이트라고 생각하고 봐도 무방하다. 모피어스가 느부갓네살호로 매트릭스를 탐사하고 있는 모습은 프로이트가 꿈의 이론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과 같다.

모피어스는 사람들이 잠자고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올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그 욕망이 더럽고 역겹게 느껴져서 심지어는 자기 자신이 변태와 같이 느껴져서 심한 거부감이 들더라도 결국은 그것이 거부할 수 없는 진실임을 보여준다. 

모피어스의 대사를 분석해보면 하나같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피어스의 난해한 철학적 메시지는 모두 프로이트 이론으로 해석하면 쉽게 풀리게 된다.


에이전트 스미스(Agent Smith)

Smith 는 '연금술사'라는 뜻이다. <매트릭스>에서 스미스는 네오(새로운 욕망)을 잘 이끌어서 사회구조 속에 편입시키려 하는 역할과 모피어스(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항하는 역할을 동시에 맡게 된다. 네오(새로운 욕망)를 잘 달래서 사회구조 속에 편입시키려 하는 행위는 언뜻 보면 트리니티(초자아)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Smith 를 사전적 정의로만 보자면 '대장장이'이지만 영화표현기법상으로 보면 '연금술사'를 뜻한다. 주인공 급에 해당하는 등장인물에 Alchemist 라는 어려운 이름을 쓰기도 곤란할 뿐더러 Smith 라는 이름이 그러한 개념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자아로서의 역할을 하는 트리니티와는 달리 에이전트는 프로이트 학문의 아류 역할을 한다. 즉, 새로운 욕망을 한차원 높은 사회구조로 가는 원동력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화시켜 기존의 사회질서에 흡수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기존 사회질서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방어기제'로서의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

에이전트든 모피어스든 결국은 사회발전이라는 한가지 목표를 추구하지만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과 변화를 추구하는 것, 혹은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는 것과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프로이트와 다른 학문과의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1편에서 모피어스가 스미스에게 감금당했을 때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You all look the same to me."

학문의 표현방식이 다를 뿐이지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실제적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어떤 것이든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연금술사'란 무엇인가? 결국 불가능한 작업이 아니었던가?

워쇼스키 형제는 2편에서 그러한 측면을 극대화시켜 에이전트 스미스가 실제적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학문만을 양산(복제)하는 것을 표현한다.

오라클

오라클은 고대 그리스어의 신탁(인간이 판단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인간의 물음에 대한 신(神)의 응답)이란 뜻이다. 오라클은 매트릭스 세계의 예언자로 등장하지만, 그의 예언 능력은 기존의 사회체제가 해결해왔던 욕망까지로만 제한되어 있다. 즉 새로운 욕망(네오)으로 인한 사회변화에 대한 예언능력은 없는 셈이다.

<매트릭스>에는 어째서 온갖 동서양 이론이 뒤섞이는가?


<매트릭스>를 둘러싼 논란 중의 핵심은 온갖 동서양의 이론이 뒤섞인 것에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니 뭐니 하는 용어를 써가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근거를 대곤 하는데, 우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제까지 설명해 왔듯이 워쇼스키 형제는 프로이트의 이론이라는 기본적인 뼈대를 가지고 한치도 벗어남이 없이 시나리오를 만들어 나갔다. 많은 관객들의 비난을 받았던 2편과 3편의 중심 철학을 간단히 요약해서 설명해보겠다.

2편에서 등장하는 프랑스인은 꽁트를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대사를 보면 알겠지만 철저하게 인과론에 근거한 논리를 내세우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2편과 3편에서 네오가 자주 접하게 되는 인도의 풍경과 인도인들 역시 인과론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장치라 할 수 있다. 1편에서 프로이트의 이론에 저항하는 세력을 두리뭉실하게 표현했다면 2편과 3편에 걸쳐서는 그 구체적인 세력을 지목한 셈이다. 

워쇼스키 형제는 어째서 인도를 인과론을 대표하는 장소로 표현했을까? 인과론이 가장 뿌리깊게 잡고 있는 분야가 종교이고, 거의 모든 종교의 발상지를 인도로 꼽고 있기 때문이다. 워쇼스키 형제가 마지막 장면에서 인도인 여자 어린아이 사티를 등장시킨 것은 인류가 마지막으로 극복해야 할 장소로 인도를 지목했다고 보면 된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인과론을 배격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눈에 드러나는 몇가지 원인에 의해 결과가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수천, 수만가지의 크고 작은 사건의 조합으로 결과가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프로이트는 원인과 결과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선택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꽁트를 상징하는 프랑스인이 'Cause and effect'라고 말하자 모피어스가 'Everything begins with choice' 맞받아치는 대사에 주목해보자

네오는 어째서 기계와의 화해를 통해 구원자가 되었는가?

모피어스(프로이트)는 처음부터 <매트릭스>의 문제를 해결할 인물이 네오(인간의 새로운 욕망)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네오는 인류의 구원자가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네오는 기계와의 화해라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통해 인류를 구원한다.

기계군단(sentinel)은 인간이 욕망을 억압하는 가운데 생기는, 인간 욕망의 찌꺼기라 할 수 있다. 본래 기계군단도 인간 욕망의 일부였지만 미처 감당해낼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억압된 욕망이 분출되어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3편에서 나타난 트리니티의 죽음도 결국 컨트롤되지 않는 인간의 욕망(sentinel)에 의하여 사회규범이 무너지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볼 수 있다.

트리니티(사회규범)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에 반해 네오는 그러한 기계군단, 다시 말해 억압된 인간의 더러운 욕망으로 여겨지던 것마저 충족시킬 수 있는 인간 긍정의 길을 찾았고, 그로 인해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노인의 정체는?

3편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여 "What do you think I am, human?"(내가 어떤 존재, 혹시 인간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매트릭스의 설계자는 글의 앞부분에서 지적했듯이 프로이트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매트릭스는 프로이트의 설계물이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매트릭스>는 프로이트가 최초로 파악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즉, 무의식의 존재가 밝혀진 이후의 세계, 의식이 제어하지 못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우리 인간이 긍정적 힘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길을 밝혀준 사람이다.

결국 "What do you think I am, human?"이라는 물음은 프로이트가 보통 사람(인간의 욕망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하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워쇼스키 형제의 물음이다.

오라클이 1편에서 네오에게 쿠키를 주고, 3편에서 사티에게 쿠키굽는 법을 알려주는 이유는?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볼 때, 인류가 현 세대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는 바로 먹는 것에 대한 욕구, 즉 식량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1편에서 네오가 찾아왔을 때 오라클은 쿠키를 주며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이 필요함을 암시하고, 3편에서는 사티에게 직접 쿠키굽는 법을 알려줌으로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다.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이자 식량문제를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인도를 지목하며, 그 중에서도 가장 힘이 연약한 어린 여자아이에게 희망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사티라는 이름의 의미는 남편이 죽었을 때 순장되는 여자라는 뜻이다. 경제권이 없기 때문에 남편이 없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가장 연약한 존재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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