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교회 신년 설교 - 시편 23편, 빌립보서 3장 


TEXT

 

- 시편 23편 1-6절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31:3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빌립보서 3장 10-14절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2)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살후2:13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눅9:62, 히6:1 

(빌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3)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CONTEXT

 시편 23편은 성경 전체 구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 하나이다. 이 시는 다윗의 말년에 쓴 것으로 복주심의 대명사와 같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구절이 정말 의미하는 것은 다윗의 그의 평생을 통해 얻은 믿음과 신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단순히 하나님이 그의 삶을 복주셨다고 보기엔 그의 삶이 그렇게 평온하지는 않았다. 박영선 목사님께서는 이 구절을 빌립보서 3장의 바울의 고백과 이어서 설명하셨다. 


위의 빌립보서 말씀 역시 바울이 그의 사역을 한창 진행하다가 옥에 갇혔을 때  쓴 편지로 바울이 그의 삶을 돌아보며 쓴 부분이다. 즉 자신이 여러 일을 했지만 그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고 하는 구절이다. 의미를 하나씩 살펴보면 상당히 무서운 구절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할 뿐 아니라, 그 고난에서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의 중심은 부활 신앙이고, 이것은 죽음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인은 부활의 의의를 통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삶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 즉 예수의 부활과 죽음의 공포 사이에 큰 discrepancy가 있다. 우리가 항상 간과하는 것 중하나는 예수는 그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안심을 원한다. 그리고 그 "고난에 참여"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안심은 과거의 일을 통한 보장의 "연속성"에서 오지만 바울을 빌립보서에서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겠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왜 그럴까? 


부활은 연속성에서 오지 않는다. 계속된 성공을 한 사람은 실패를 하기 전에 죽어버려서 실패를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부활로 나아가는데 우리의 실패 즉 부연속성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회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회개는 묶은 때를 씻는 것이 아니다. 회개는 자책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윗의 삶이고, 시편 23편이다. 다윗의 삶을 한번 살펴보자. 그가 처음 성경에 등장한 것은 형들이 전쟁에 나가고, 그들의 생사가 궁금한 아버지가 어린 동생을 전쟁터에 보내면서 부터이다. 그는 그 곳에서 극적으로 블레섯의 장수 골리앗을 죽이고 영웅이 된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는가?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이라는 얘기를 들은 사울은 미쳐서 다윗을 죽이려 한다. 결국 다윗은 자신가 물리친 블레셋으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당연히 다윗을 믿을 리 없고, 다윗은 미친 척을 하면서 겨우 살아난다. 우리는 다윗과 골리앗을 매우 강조하지만, 실상 성경에서는 그 이후에 이 사건에 큰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 다윗은 쫓겨다니다가 결국 왕이 된다. 그리고선 아들이 반란을 일으켜 다시 도망다닌다. 그러다 시므온에게 돌도 맞고, 욕도 먹는다. 그의 부하가 시므온을 죽이려하자 다윗은 복수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한다. 이것이 바로 그의 믿음이다. 그리고 이 때 다윗은 바울이 말한 "뒤는 잊어버리고"를 깨달았음이 분명하다. 


회계는 나의 나된 것,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일하신 것이라 고백하는 것이다. 단순히 죄를 통보하고, 죄책감을 더는 것이 아니다. 


시편 23편과 빌립보서 3장은 매우 다른 내용을 다루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장 그들이 말년에 얻은 신앙의 정수를 말하고 있다. 나의 삶의 자랑이 되야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나의 삶의 끝은 부활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빌립보서 1장에 잘 나타나있다. 


(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 1: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빌 1: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빌 1: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얼마나 무서우면서도, 얼마나 멋있는 삶인가.. 두려울 것이 없고, 걱정될 것이 없는 것이다. 

내 삶에 기적이 담긴다는 것은 공부를 안해도 시험에 붙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영광을 받으시고, 일하신 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형통한 삶이고, 복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외부의 적과 고난이 아니다. 푸른 풀밭은 모든 것이 형통한 상황이 아니다. 다윗이 고백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신 다는 것을 알게된 그 믿음이다. 그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 속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그 믿음을 갖자. 


 이러한 설교는 복음의 보편성과 진리의 베타성을 참 잘 설명한다.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으며, 다른 종교와 차이점을 보인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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